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晉州任氏) 우강(牛剛) 임석우(任錫佑)

임화영 2020. 6. 10. 10:22

진주임씨(晉州任氏) 우강(牛剛) 임석우(任錫佑)

 

 

 

 

 

우강(牛剛) 임석우(任錫佑)는 헌납공(獻納公)자손 숙계공파(淑溪公派) 진주임씨(晉州任氏) 28世孫으로 아호(雅號) 석재(錫在)이며 호는 우강(牛剛)이다. 1920年 陰曆 710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에서 건숙(建淑) 임경교(任敬敎)義陵參奉 朴濟相女 潘南朴氏 사이에서 12長男이다. 우강(牛剛) 임석우(任錫佑)는 어려서부터 孝心이 지극하고 學文이 뛰어났으며 書藝에도 能通하였다. 일제강정기 高山公立保統學校卒業하고 1939年 崔斗鎭長女 永順婚姻하여 膝下63를 두었다.

 

 

6.25전쟁이 나자 우강(牛剛) 임석우(任錫佑)徵用 勞務者로 끌려가기도 했다. 政府는 일제강정기에 朝鮮靑年日本徵用으로 끌고 간 징병 및 징용 피해에 대한 위로금으로 총 256560만 원을 지급했고, 동시에 일제시대 재산권 보상 명목으로 총 662200만 원을 지급했지만 19506.25戰爭詩 30만명이나 되는 靑年들을 총 한자루 없이 전쟁터에 끌고가서 普及品을 나르다가 죽거나 다친 6.25 徵用 勞務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現實이다. 우강(牛剛)6.25 徵用 勞務者로 끌려가 갖은 苦痛을 겪고 被接한 상태로 子女가 있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로 돌아와 빨찌산들의 侵入을 막기 위한 警備隊員으로 勤務를 하기도 하였다.

 

 

우강(牛剛)草根木皮로 생활하면서 진주임씨(晉州任氏) 先祖인 임윤성(任尹成)後孫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천곡서원(泉谷書院)을 찾아 一家들과 매년 빠짐없이 培養하며 진주임씨(晉州任氏)族譜 編纂參與하여 子孫들의 모범을 보였으며 地域龍伏老人中央會 會長으로 一任을 다하였고 成均館儒道會 高山支部長高山鄕校會長歷任하고 1998年 陰曆 1025우강(牛崗) 임석우(任錫祐)別世하던날 喪家 일대에 거쳐 천둥이치고 우박과 소나기가 내리는 怪異現像이 나타났으며 일대 사람들은 나랏님이 世上을 떠나면 나타나는 現像이라고 하며 德望있는 사람이 돌아가셔서 아쉬워하고 死後에도 높은 자리로 가셨을거라며 稱訟하였으며 우강(牛剛)子女들은 1년간 朔望을 치루웠다. 현재 전북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275 厚祿安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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