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晉州任氏) 분관도(分貫圖)

임화영 2020. 12. 6. 10:50

진주임씨(晉州任氏) 분관도(分貫圖)

 

 

 

진주임씨(晉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시조(始祖)로 보계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시조(始祖) ()은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고려 때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에 오른 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풍천(豊川)에 사적(賜籍)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풍천임씨(豊川任氏) 보첩(譜牒)과 가첩(家牒) 진주임씨세보(晉州任氏世譜)에 따르면 시조(始祖) ()-가규(可珪)-()-()-천유(天裕)까지 五世를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황해도 풍천 남쪽 박달산(朴達山) 아래 도곡리에서 발견된 ()천유(天裕)의 비()와 지석(誌石)이 발견된 점은 보첩(譜牒)과 가첩(家牒) 세보(世譜)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와 지석(誌石)이 도곡리에서 발견된 점과 2가규(可珪)高麗朝에 제술업진사(製述業進士)를 지냈고 3世 諱()高麗朝에 상의국(尙衣局) 봉어(奉御)를 지낸 것으로 보아 온() 시조(始祖) 만이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추정이 된다.

 

 

 

 

 

 

6()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으며 그의 아들 대()에 와서 백파(伯派) 자송(子松)과 중파(仲派) 자순(子順)으로 나뉘어 졌다. 자송(子松)은 백이정(白頤正)의 문인(門人)으로 조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서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에 봉해졌고, 자순(子順)은 통헌대부(通憲大夫) 민부전서(民部典書)를 거쳐 개성부사(開城府使)를 지냈으며 자송의 넷째아들인 덕생(德生)은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사(左僕射)를 지내고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졌다. 풍천임씨(豐川任氏) 8이며, ()7世孫인 진주군(晉州君) 덕생(德生)이 풍천임씨(豐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晉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豊川任氏28世孫/晉州任氏19世孫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