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풍천임씨, 진주임씨 시조 임온과 임득경

임화영 2020. 12. 26. 10:59

풍천임씨, 진주임씨 시조 임온과 임득경

 

 

 

풍천임씨(豊川任氏) 족보(族譜)와 진주임씨(晋州任氏) 족보(族譜)에 의하면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은자광록대부를 지낸 시조 임온(任溫)5대손 임주(任澍)가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왔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황해도 풍천 남쪽 박달산 아래 도곡리에서 임주(任澍)의 조부 임도(任徒)와 부 임천유(任天裕)의 비()와 지석(誌石)이 발견됨으로써 중국 도래설이 부정되기도 하였는데 고고학적으로 임주(任澍)의 부친(父親)과 조부(祖父)의 묘()가 발견이 되어 전승에 의문점과 서하(西夏) 출신이라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역사(歷史)와 문헌(文獻)을 바탕으로 조명코자한다.

 

 

 

 

 

 

1137년 서하국(西夏國)의 황제 숭종이 송나라의 서안주라는 지역을 공략했고 그곳에서 송나라 통판의 벼슬에 있던 임득경이라는 인물의 딸을 얻어 훗날 황후로 삼았으며 임득경(任得敬)은 국상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임득경(任得敬)은 당한 수완가였고 그의 형제까지 실권을 쥐면서 그의 가문은 서하국(西夏國)을 좌지우지하는 권문세가가 되지만 1170년경 정적에 의해 척살이 된다. 임주(任澍)가 원나라에서 충렬왕과 원나라 공주를 따라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시기는 1275년인데, 임주(任澍)의 조부 임도(任徒)와 부 임천유(任天裕)의 비석이 발견되었기에 서하국(西夏國) 임씨(任氏)의 동래 시기는 서하(西夏) 멸망 이전으로 보인다. 여기서 풍천임씨(豊川任氏)와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이며 임주(任澍)5대조 임온(任溫)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다.

 

 

 

 

 

5대를 100년에서 150년이라고 한다면 임온(任溫)은 대력 1120년경의 인물이다. 임득경(任得敬)1137년 송나라의 고위관리였고 훗날 서하국의 국상이 된 인물이기에 그가 임온(任溫)일 가능성이 높다. 소흥부 자계현이 임득경(任得敬)의 고향이라고 한다면 확인이 될 부분이고 임주(任澍)의 조부(祖父) 때 고려로 들어왔다고 한다면 그 연대는 대략 1230년으로 서하의 멸망시기와 겹치기에 원나라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왔을 수도 있다. 서하국이 송나라와 무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황족은 한 때 조씨(趙氏), 이씨(李氏)를 사용하였고 서하의 주민들도 한족의 성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임씨(任氏)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임득경(任得敬)의 권세가 대단했기에 그의 성씨를 따서 임씨(任氏) ()를 가진 서하 연원의 임씨(任氏)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서하에서 임씨(任氏) 가문은 서하의 귀족가문들과 통혼을 하였을 것이기에 서하의 귀족 가문들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당항강족이고 출발한 지역은 사천성 민강지역이다. 그곳은 하나라 우가 태어나고 자란 문천 석뉴와 염룡국의 전승이 있는 곳이다. 그들이 서하라고 이름한 것은 하나라의 후예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서하의 황실 성은 중국에서 내려준 조씨(趙氏)나 이씨(李氏)가 아닌 외성이었고 주나라 때 하나라 우의 후손이 가졌던 성씨이다.

 

 

 

 

 

 

서하의 귀족이 내몽고 은천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민강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동녀국(東女國)의 멸망이다. 최근 발견된 동녀국의 후손 자바족 마을 언어와 서하국의 언어와의 연관성이 보고되기도 했다. 사천성 동녀국에서 시기적으로 1000년 올라가면 석탈해의 어머니 나라 여국이 나오고 우리나라 박씨(朴氏)와 백씨(白氏)가 출발한 양맥족(梁貊族)의 연원이 나온다. 양맥족의 출발지는 섬서성으로 보이나 그 뿌리는 사천성 북부의 저강계 민족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 임씨(任氏)의 기원은 복희 풍성이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가 복희의 후손을 찾아 산동성 곡부의 임국(任國)의 제후로 임명한 것이 그 시작이다. 임씨(任氏)는 감숙성 청동기 세력이였고 서하의 귀족과 같은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임득경(任得敬)이 서하에서 복희로 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연원을 주장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임득경(任得敬)이 서하국에서 분봉(分封)받은 거대한 봉토의 이름은 임초(任楚)였는데 초나라 영토였던 소흥부 자계현에서 왔다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다.

 

 

 

 

西夏崇帝李乾顺皇后

 

任皇后生于1120死于1170西夏皇后汉人夏崇宗李乾顺的第二任皇后夏仁宗即位尊为皇太后以贤德而得善终谥号待考

任氏汉人父任得敬曾官任宋朝翔庆军都统军绍兴七年夏大德三年1137),任氏之父任宋朝的西安州通判时夏崇宗李乾顺攻克西安州任得敬投降17岁的女儿任氏献给李乾顺

 

任得敬原为北宋降臣以献女给夏崇宗而被擢为静州防御使后因平定萧合达叛乱和镇压讹起事封西平公天盛二年(1150)任得敬为国相弟任得聪为殿前太尉任得恭为兴庆府尹任氏兄弟遂擅夏政随后任氏势力不断膨胀任得敬进封为楚王出入仪从与皇帝相仿天盛十七年(1165)任得敬于西平府(今宁夏灵武)兴建宫殿企图将西平府夏州作为其领地乾元年(1170)任得敬胁迫仁宗分国土之半归其统治夏仁宗被迫答允分西南路及西平府灵州罗庞岭(今甘肃武威境)等地归楚国任得敬又迫使仁宗上表金国要求对楚国予以承认被金世宗拒绝任得敬结怨于金转通南宋约夹攻金后阴谋败露夏仁宗得金朝支持捕杀任氏兄弟任得敬分国失败

 

(豊川任氏28世孫/晋州任氏19世孫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