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계공(淑溪公) 천곡서원(泉谷書院) 2021년 향사(享祀)
숙계공(淑溪公) 천곡서원(泉谷書院) 2021년 향사(享祀)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을 배향하는 천곡서원(泉谷書院)은 매년 음력(陰曆) 2월 15일에 향사(享祀)를 하고 있습니다. 2021년 향사(享祀)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진주임씨대종회(晋州任氏大宗會)가 동참하고 있어 이에 종중 임원들이 참석하여 간소하게 배향하기로 하였습니다. 향사(享祀)는 2021년 3월 27일 천곡서원(泉谷書院) 경내 천곡사(泉谷祠)에서 진행한다.
천곡서원(泉谷書院)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산남로 52-32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을 배향하는 서원(書院)이다. 본래 백현서원(栢峴書院)에 임윤성(任尹聖, 1547-1608)과 조선 중기의 문신 구영(具瑩, 1584∼1663)과 함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으나 헌작(獻酌)의 문제로 1941년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천곡서원(泉谷書院)을 건립하여 임윤성(任尹聖)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하였다. 천곡서원(泉谷書院) 경내에 위치한 천곡사(泉谷司)에서 고산향교(高山鄕校) 유림들과 진주임씨(晉州任氏) 후손(後孫)들에 의해 매년 음력(陰曆) 2월 15일에 향사(享祀)를 하고 있다.
임윤성(任尹聖)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字)는 상경(商卿)이고, 호(號)는 숙계(叔溪)이며,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다. 1547년(明宗2) 고산면(高山面) 서봉리(西峰里) 관동(寬洞)에서 천수(天壽)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579년(宣祖12)에 생원(生員)이 되었고, 1581년(宣祖14)에 모병(母病)이 위독하므로 작지주혈(斫指注血)하여 회생(回生)케 하였으며 생동어(生鮦魚)가 영약이라 하니 한겨울에 냇가에 나가 호읍축천(號泣祝天)하여 물고기를 얻어 드려서 1개월 여를 연명(延命)케 하였다. 1584년(宣祖17)에 율곡(栗谷)은 홍귀상(洪龜祥)의 집에서 만나 학문상 의심나는 곳을 문답하였는데 율곡이 임윤성(任尹聖)의 박식(博識)은 성덕군자(成德君子)라 이를 만하다고 칭송(稱頌)하였다. 또 중용(中庸) 중 율곡의 견해를 책머리에 적고 자신의 견해를 부기하여 율곡에게 보이자 율곡이 칭찬하여 용학문답(庸學問答)이라 명(名)하고 책으로 만들게 하였다. 또 유성룡(柳成龍)이 그 기재(奇材)를 알고 칭찬하여 뒤에 천주(薦主)가 되었다. 1592년(宣祖)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유생(儒生)으로 호종(扈從)하였는데 이정구(李廷龜) ․ 신흠(申欽) 등이 천거(薦擧)하여 선무랑(宣務郞)이 되었다. 1596년(宣祖20)에 제원찰방(濟原察訪)이 되고 1608(宣祖41)에 거창현감(居昌縣監)에 제수되었다. 재임 중 권농(勸農)에 힘쓰고 여씨향약절목(呂氏鄕約節目)으로 권면(勸勉)하여 유풍(遺風)을 교화(敎化), 진작(振作)시켜 칭송(稱頌)이 자자(藉藉)했으며 부임 6월만에 순직(殉職)하였다.
천곡서원(泉谷書院) 경내에는 강당과 사당, 기념비 등이 있는데,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고 강당은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현판(懸板)은 천곡서원(泉谷書院) 경내 명성재(明盛齋) 밖에 설치되었으나 높이가 낮고 훼손된다는 이유로 실내 거실로 옮겨져 설치되어 있다. 진주임씨대종회에서 숙계공(淑溪公) 13世孫 임영(任詠)을 천곡서원 관리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진주임씨 고산종중회(회장 임용섭, 총무 임동호)에서 관리하게 하여 보전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
豊川任氏28世孫 / 晋州任氏19世孫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