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성씨의 고향 진주임씨(晋州任氏)

임화영 2022. 1. 16. 11:01

성씨의 고향 진주임씨(晋州任氏)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성()이 풍천임씨(豐川任氏)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에서 분관(分貫)되어 진주임씨(晋州任氏)가 있다는 것이 세인(世人)에게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고려조에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와 충숙왕 때 일등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올랐던 임자송(任子松)의 넷째 아들인 임덕생(任德生)1334년 충혜왕(忠惠王) 1년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충혜왕(忠惠王) 복위 3년에 정6품 상의봉어(尙衣奉御), 공민왕(恭愍王) 원년 성균관 으뜸벼슬인 정3품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공민왕(恭愍王) 7년에 고려 때 행정기관의 최고기관으로 6부를 감독하고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는 상서성 정2품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공민왕(恭愍王) 10년 진주군(晋州君) 봉군(封君)된 인물이다.

 

 

 

 

 

 

 

임덕생(任德生)의 손자인 임충(任衝-초명)1385음서(蔭敍)로 나갔다가 방촌(厖村) 황희(黃喜)와 함께 문과(文科)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부(門下府) 소속의 정5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을 하고 139285일 고려 멸망하고 조선조가 들어서 그해 121인재 천거와 시무책을 정할 때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인 전주로 낙향하였는데 조선 태조(太祖)방촌(厖村) 황희(黃喜)를 보내 폐백을 보내오고 벼슬을 제의하자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거절하자 백이숙제 이후 또 한사람이라 태조(太祖)에게 알리기도 하였다. 이후 경상도(慶尙道)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생활을 하며 스스로 호()를 죽곡(竹谷)이라 하고 를 형()으로 개명하고 조부(祖父)가 국왕(國王)으로부터 받은 진주군(晋州君)을 사관으로 진주를 적()으로 하였다.

 

 

 

 

 

 

 

조선조에 들어 성종부터 연산군대에 임사홍 부자가 잠시 전횡해 것을 빼고는 주로 선조이후의 조선중기에 세력을 떨쳤으며 벼슬보다는 학문을 숭상하는 이가 많았다. 일찍이 율곡 이이의 문인(文人)이었던 임윤성(任尹聖)은 율곡선생과 학문을 같이하여 용학문답((庸學問答)을 편찬하였고 율곡선생은 임윤성(任尹聖)의 박식함이 가히 성인군자(聖人君子)라고 하였다. 사명당은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무죄 석방되고 당시 정여립(鄭汝立)과 학문을 같이한 문필가(文筆家)로 유명한 상산(尙山) 임책(任責), 정여립(鄭汝立)이 조직한 대동계(大同契)가 조정의 서인 세력에 의해 역모 준비를 위한 조직이라는 것을 알고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에게 뜻을 버리도록 장서(長書)를 보낸 인물로 소찬문집(所撰文集) 25권을 지었으나 임진란에 소실(消失) 되고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3世孫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은 선조(宣祖)를 신의주까지 호종하고 훗날 거창현감을 지냈으며 임윤성(任尹聖) 보다 3살이 위인 유정 임응규(任應奎)11世孫으로 두분 과계는 대부(代父)와 종손(從孫) 관계가 되며 사명당은 승장으로서 조선에 큰 공헌을 세운 인물이다. 사명당은 지팡이를 꽂아 놓고 사라지며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사명당설화는 구국도술설화로서 민족의 사랑을 받고 널리 전승되고 있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豐川任氏)에서 분관(分貫)된지 7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 종3품 좌윤(左尹)을 지낸 임을일(任乙馹)을 필두로 진주임씨(晉州任氏) 인물은 선무랑(宣務郞),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봉직랑(奉直郞)을 거쳐 경상도(慶尙道)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을 비롯하여 도내창의도유사(道內倡義都有司)를 지낸 모재(慕齋) 임경무(任慶茂), 고부초군수(古府君守) 덕이(德而) 임정원(任鼎元), 工曹參議(공조참의) 임세우(任世禹), 工曹參判(공조참판) 임상백(任商白),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임도명(任道明), 밀서감승(密書監承) 임도행(任道行), 의정부참정(議政府參政)과 시강원사강관(侍講院侍講官) 임도석(任道碩), 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임은섭(任殷涉), 호조참판(戶曹參判) 임은덕(任殷悳), 의정부(議政府) 부참찬(府參贊) 임은필(任殷必), 호조참의(戶曹參議) 임은대(任殷大), 공조참판(工曹參判) 임희신(任希臣), 호조참판(戶曹參判) 임희영(任希永),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임성모(任聖模),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承旨) 임헌방(任憲邦), 고산향교전교(高山鄕校典校) 청강(淸岡) 임헌준(任憲濬), 고산향교유도회장(高山鄕校儒道會長) 취송(翠松) 임재교(任在敎), 고산향교회장(高山鄕校會長)과 성균관유도회고산지부장(成均館儒道會高山支部長) 우강(牛岡) 임석우(任錫祐)가 있으며 진주임씨(晉州任氏) 700년 역사의 유구한 전통과 자랑스러운 진주임씨(晋州任氏) 후손(後孫)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킬 진주임씨대종회의 역할이 필요할 때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치료제 투여로 빠른 종식이 되길 바라며 잠정적 일정이긴 하지만 4월 첫째주 토요일에 진정한 새 역사를 기록할 대종회 총회가 되길 기원한다.

 

 

 

晋州任氏歷史硏究院 任和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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