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의 진실”

임화영 2023. 6. 15. 13:05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의 진실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역사는 후주(後周) 때 중국 절강성 소흥부 자계현에서 전거(轉居)하신 풍천임씨 시조(始祖) ()으로서 한림학사와 경상도 사록(司錄) 도임 후 품계는 은자광록대부(銀紫光綠大夫, 3)이었다. ()은 고려 4대 광종 7956년에 후주(後周)의 봉책사(封冊使 : 왕후, 세 자의 책봉문을 가져오는 사신설문우(薛文遇)쌍기(雙翼)와 함께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자 돌아가실 수 없어 머물게 되었고 병이 낫자 일행을 만나본 光宗이 후주의 허락을 받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했으며 958년에는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하여 그해 5월에 첫 과거에 지공거(知貢擧 : 과거시험관로서 정사를 도왔다.

 

 

 

 

 

세계(世系)6어사공 ()의 맏아들 서하부원군府院君 諱 子松)과 둘째아들 전서공(典書公 諱 子順)의 백파(伯派)와 중파(中派) 두 줄기로 나뉘었다. 백파조(伯派祖) 서하부원군은 백이정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고 (1339, 고려사) 정난공신(精難功臣)에 올랐고 충혜왕 대까지 벼슬하여 판시중삼사(判侍中三司)에 이르렀고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에 진봉되고 장자 풍원군 경유(景儒)차자 문간공(文簡公) 풍산군 덕유(德儒)삼자 사복공 덕수(德壽)사자 진주군(晋州君) 덕생(德生) 4개 지파로 나뉘어 임문(任門)을 융성하게 빛내고 있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진주군(晋州君)으로 봉()받은 덕생(德生)에서 풍천임씨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덕생(德生)은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아들은 좌윤(左尹-고려시대 삼사소속의 종3)을 지낸 을일(乙馹)이며 손자는 이조정랑(吏曹正郎) 헌납(獻納)을 지낸 충정공(忠貞公) ()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진주임씨 비조인 진주군(晋州君) 덕생(德生)과 아드님이신 좌윤공(左尹公) 을일(乙馹)에 대해서 진주임씨역사연구원(원장 임화영)에서 고려사의 문헌을 연구 발췌하여 진주임씨의 뿌리를 찾고 진주임씨 덕생(德生)1()로 시작하여 2() 을일(乙馹), 3() ()으로 비로소 진주임씨(晋州任氏)의 뿌리를 정착시켰다. 더불어 진주임씨대종회는 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잘못된 족보(族譜)에서부터 문헌(文獻)들을 수정하여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환경신문 기자, 한국NGO 시민기자 = 임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