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 임형(任衡)의 발자취 수양산(首陽山)

임화영 2021. 12. 30. 06:51

진주임씨 임형(任衡)의 발자취 수양산(首陽山)

 

 

 

수양산(首陽山)은 지리산과 연결된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으며 필자의 처가(妻家)가 있는 산청 읍내에서 자동차로 약40분이 소요되는 해발 502.3m의 경관이 빼어난 산()이다. 이곳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백운동 계곡이 있다. 조식(曺植) 선생은 조선 중기 남명학파를 창시한 유학자로 조정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평생토록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지리 산록에 은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가장 많은 의병장을 배출한 큰 스승이기도 하다.

 

 

 

 

계곡을 입구에 음식점들을 지나면 용문동천임을 알리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는 널찍한 암반 위로는 목욕을 하면 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多知沼)가 있다. 폭이 26m, 길이가 30m에 달하는데 주변이 모두 바위로 둘러쌓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높이 4m 여의 백운폭포를 비롯하여 다섯 곳의 폭포와 담()이 있다 하여 오담폭포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외에도 옳은 소리만을 듣는다는 청의소(聽義沼), 아함소, 장군소, 용소 등의 소()와 탈속폭포, 용문폭포, 십오담폭포, 칠성폭포, 수왕성폭포 등이 있으며 사림 학파의 거두로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남명(南冥)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이 서기139285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開國)하고 121일 인재 천거 때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벼슬을 그만 두고 이곳 수양산(首陽山)4반세기를 은거했던 곳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시호(諡號)는 문경(文敬)이며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분이다.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사천(沙川) 남을진(南乙珍), 야은(冶隱) 길재(吉再). 방촌(厖村) 황희(黃喜) 등과 친교(親交)가 있었는데 남명(南冥) 선생이 포은(圃隱)의 문인이다. 고려 말엽 어지러웠던 시대 같은 연유로 벼슬을 버리고 수양산(首陽山)으로 이어지는 끈끈한 인연이 있었고 문경(文敬)의 시호(諡號)에서 문인으로서의 공경을 받는 분이라면 시조 ()의 충정(忠貞)의 시호(諡號)에서 곧은 충절의 기백과 용기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험하지 않은 산새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폭포와 흐르는 계곡을 보면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요즘도 많은 동호회 등산객과 비경을 보기위해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차후 기회가 되면 선조의 사적 탐방으로 우리의 시조(始祖)가 머물렀던 수양산(首陽山)에 한번쯤은 가볼만하다고 사료된다.

 

 

 

 

晋州任氏歷史硏究院 任和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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