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晉州任林) 족보(族譜)

임화영 2020. 9. 14. 16:53

진주임씨(晉州任林) 족보(族譜)

 

 

 

진주임씨 족보 - 1957년도판

 

 

우리 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1752(英祖28) 壬申族先祖 도유(道儒)께서 創刊 하신 수차에 거쳐 族譜束修하여 왔으나 문헌(文獻) 참고(參考)에 미비처가 불무(不無)하였으나 1928戊辰에 이르러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등화보결(燈火保結)하여 보책을 편수함에 소연하고 소목이 분명하여 계선유후(繼先裕後)의 문헌(文獻)이 귀감(遺憾)이 얻게 되었다. 其後 丁酉年(1957)취송(翠松-在敎)의 주선(周旋)으로 족보(族譜)를 발행(刊行)하였으나 우금(于今) 이십여성상(二十餘星霜)이 흘러 후손의 혼가출산(婚嫁出産)과 상사장매(喪死葬埋)변동이 많을뿐만 아니라 한문(漢文)으로 족보(族譜)가 되어 있음으로 총생(摠生)들이 이해 부족하여 봉람()을 꺼려하고 있었다. 己丑年(2009)에 이르러 한글을 보강하고 子女(자녀)를 함께 記錄(기록)하고 있다.

 

 

 

진주임씨 족보 - 1891년도판

 

 

 

1860년 한문(漢文)으로 상하권(上下卷)으로 발행하고, 1891년 한문(漢文)으로 상중하(上中下)로 발행하였으며 19573권을 한문(漢文)으로 편집(編輯)하여 발행하고 1979년 전권(全卷)으로 진주임씨(晉州任氏)를 사용하는 손()으로 구성하여 한문으로 출판(出版)되었다. 2009陰曆 215일 천곡서원(泉谷書院)에서 숙계(淑溪) 배향(配享)() 족보(族譜) 편수(編修)를 결정(決定)하고 4월에 이르러 병교(炳敎) 종친회장(宗親會長)의 주관하에 족보(族譜) 발행에 대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문을 혼용하고 인원이 많치가 않아 자녀(子女)들을 함께 등재(登載)하기로 하고 누구나 고관(告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종중(宗中)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4파의 종중(宗中)께 알리고 7개월 동안 자료(資料)를 수집(收集)하였나 많은 일가(一家)들이 연락이 두절(頭切)되어 미비한 자료(資料)로 그 해 9월 한문한글 혼용(混用)으로 발행하였다.

 

 

 

진주임씨족보 - 1860년도판

 

 

 

 

2009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 발행 후() 2020년 현재 족보(族譜) 편수(編修)에 참여한 분들 중 생존해 있는분들이 많치 않고 편수(編修)에 있어서 진주임씨(晉州任氏)에 대해 전문지식을 지녔던 분들이 別世하여 향후 족보(族譜)에 편수(編修)에 많은 심려(心慮)가 된다. 경영(庚永), 관영(官永)두 분이 생존에 계실 때 우리 종중(宗中)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나눈 바 족보(族譜) 등재(登梓)에 있어서 많은 일가(一家)들이 빠져있어 진주임씨(晉州任氏) 宗親(종친)들을 찾아 결합(結合)하여 조기(早期)에 편수(編修)하라고 당부(當付)하였다. 이에 진주임씨(晉州任氏) 종친회(宗親會)가 더욱 박차를 가하여 자손(子孫)들 번성하였고 출세한 자들도 많이 있지만 족보(族譜)에 등재되지 못한 일가(一家)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어 족보(族譜) 편수에 있어서 자료수집(資料收集)에 진주임씨(晉州任氏) 일가(一家)들은 적극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

 

 

진주임씨 족보

 

 

晉州任氏29世孫 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