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任氏)의 본관(本貫)과 시조(始祖)
임씨(任氏) 본관(本貫)은 풍천(豊川), 장흥(長興), 진주(晉州), 곡성(谷城), 과천(果川), 아선(牙善), 회덕(懷德), 함풍(咸豊) 등 29개 본관(本貫)이 전해지며 풍천(豊川), 장흥(長興), 진주(晉州), 곡성(谷城), 관산(冠山)은 역사와 시조(始祖)가 문헌에 기록되어 확인되고 있지만 24개 본관(本貫)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본관(本貫)은 시조(始祖)의 거주지나 근거지 지명을 따서 만들어진다. 성(性)은 시조의 혈통을 표시하거나 같은 혈통을 다른 혈통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호칭이다. 대를 내려가 수십촌으로 촌수가 멀어져도 같은 본관과 성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동족(同族)으로서의 유대의식을 갖는다. 본관(本貫)과 성(性)을 갖는 전통은 고려왕조 때부터 시작되고 본관(本貫)의 체계가 확정된 시기는 고려 초기이다. 본관(本貫)을 관향(貫鄕), 관적(貫籍) 또는 관(貫)이라고도 한다.
① 풍천임씨 (豊川任氏)
풍천임씨의 시조는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중국 원나라 때 고려로 왔다고 전해지며 고려에서 은자광록대부를 지낸 임온(任溫)이다. 온(溫)의 6세손(世孫)인 주(澍)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대(代)에 와서 백파(伯派:자송)와 중파(仲派:자손)로 크게 나뉘며 두 파(派)에서 고루 인물을 배출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諱자송(子松)은 백이정(白以正)의 문인(門人)으로 조적(趙積)의난(亂)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 서하부원군(西下府院君)에 봉해졌고, 諱자순(子順)은 통헌대부(通憲大夫)로서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내고 개성부사(開城府使)를 지낸 명문가이다.
② 장흥임씨(長興任氏)
장흥임씨 시조(長興任氏) 시조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 출신으로 고려(高麗) 정종(靖宗) 때 고려에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을 거쳐 태자태전(太子太傅)을 지낸 임호(任顥)이다. 임호(任顥)는 당시 중국에서 올 때 석가(石舸)를 타고 현 전남(全南) 장흥군(長興郡) 관산읍(冠山邑) 천관산(天冠山) 아래 임씨도(任氏島)에 맨 처음 정박한 후 옥당리(玉堂里) 당동(堂洞) 마을에 정착하며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장흥(長興)이라 부르게 되었다.
③ 진주임씨 (晉州任氏)
진주임씨(晉州任氏) 始祖(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諱온(溫)의 7세손(世孫)인 자송(子松)의 아들 경유(景儒), 덕유(德儒), 덕수(德壽), 덕생(德生) 4형제를 두었으며 四男인 문하시중좌복사를 지내고 晉州君(진주군)으로 봉해진 諱덕생(德生)에 이르러 풍천임씨에서 진주임씨로 분관 되었으며 덕생(德生)의 孫子가 衡이다. 임형(任衡)은 고려말과 조선초의 인물로 초명은 충(衝)이며 호는 죽곡(竹谷)이다. 고려 말엽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을 역임하였고 조선 태조(太祖)가 들어서자 벼슬을 그만두고 경남 진주(晉州)의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고 형(衡)으로 개명하였다. 방촌(尨村) 황희(黃喜)가 함께 새 조정에 나아가 일하기를 권유하면서 이르기를 "어디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리요" 하니 공이 답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요" 하고 하면서 절의를 지키며 옛 임금을 사모하다가 끝내 생을 마쳤다. 사후에 충정(忠貞)의 시호를 받았고 자손들이 晉州를 관향으로 두고 諱임형(任衡)을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로 삼고 있다.
④ 곡성임씨(谷城任氏) 시조
곡성임씨(谷城任氏)의 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 진주임씨(晉州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온(溫)의 5세손(世孫)인 장남 천유(天裕)는 풍해군(豊海君)이며, 차남 천록(天祿)이 곡성임씨의 시조가 된다. 천록(天祿)은 고려 중현대부군기시윤(中顯大夫軍器寺尹)을 지냈고 곡성군(谷城君)으로 봉(封)해졌으며 풍천임씨에서 분관되었으며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곡성(谷城)으로 하게 되었다. 천록(天祿)의 아들 영진(英進)을 시조로 표기한 바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앞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⑤ 과천임씨 (果川任氏)
과천임씨 (果川任氏) 始祖(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고려 말엽에 사재사부령(司宰寺副令)을 지낸 임경종(任敬宗)이다. 과천임씨 시조에 대한 자세한 문헌 기록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⑥ 함풍임씨(咸豊任氏)
함풍임씨(咸豊任氏) 始祖(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조선조인으로 임진미(任珍美)로 기록되어 있지만 시조에 대한 자세한 문헌 기록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⑦ 아선임씨 (牙善任氏)
아선임씨 (牙善任氏) 始祖(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고려조 예빈소경(禮賓少卿)을 지낸 임용비(任龍臂)이다. 아선임씨 시조에 대한 자세한 문헌 기록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⑧ 회덕임씨(懷德任氏)
회덕임씨 (懷德任氏) 始祖(시조)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임온(任溫)을 보계하여 조선조에 별장(別將)을 지낸 임수성(任守城)으로 전해오나 시조에 대한 자세한 문헌 기록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⑨ 관산임씨(冠山任氏)
관산임씨(冠山任氏) 始祖(시조)는 장흥임씨(長興任氏)와 같은 임호(任顥)를 보계하여 조선조 말엽 의병이며 독립운동가인 임정현(任淨鉉)이다. 일명 준현(準鉉)으로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병서를 즐겨 읽고 천문과 술수에도 능하였다. 보성을 중심으로 많은 곳에서 승전하였으며 병치전투(並峙戰鬪)에서 격전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시천병참에 구금되었고 옥중에서 고문으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후손들은 관산을 관향으로 두고 임정현(任淨鉉)을 시조로 삼았다.
또한, 광산임씨(光山任氏), 나주임씨(羅州任氏), 대전임씨(大田任氏), 보령임씨(保寧任氏), 부천임씨(富川任氏), 서하임씨(西河任氏), 서해임씨(西海任氏), 수원임씨(水原任氏), 순천임씨(順天任氏), 안동임씨(安東任氏), 청풍임씨(淸風任氏), 춘천임씨(春川任氏), 충내임씨(忠內任氏), 파평임씨(破平任氏), 평택임씨(平澤任氏), 풍산임씨(豊山任氏), 해남임씨(海南任氏), 홍천임씨(洪川任氏), 백천임씨(白川任氏), 현도임씨(現道任氏)가 있지만 문헌 기록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풍천임씨 (豊川任氏)와 장흥임씨(長興任氏)에서 조선후기부터 현대까지 분관(分貫)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부 임씨(任氏)의 경우 본관(本貫)을 찾지 못하여 1896년 민적(民籍)제도와 1909년부터 호적법의 하나인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새로 등록된 본관(本貫)으로 사료된다. 임씨(任氏) 성은 예로부터 같은 혈족이라 하여 혼인하지 않고 하나의 일가(一家)로 보고 있다.
晉州任氏29世孫 任和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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