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임씨(晉州任氏)의 연원(淵源)
시조 임형(任衡)은 여말 선초의 인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초명은 충(衝)이며, 호는 죽곡(竹谷)이다. 고려 말엽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랑(正郞), 헌납(獻納)을 역임하였고, 고려의 사직이 망하고 조선이 개국함에 벼슬을 그만 두고 경남 진주의 수양산에 은거하여 두분 불출하였다.
조성에서 누차 벼슬을 내려 부르고, 또 방촌(尨村) 황희(黃喜)가 함께 새 조성에 나아가 일하기를 권유하면서 이르기를 "어디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리요" 하니 공이 답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요" 하고 하면서 절의를 지켜 수양산에서 이름을 바꾸고, 옛 임금을 사모하다가 끝내 몸을 마쳤다. 사후에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렸다. 공이 진주에 은거함으로서 자손들이 그 곳을 관향으로 하여 시조로 삼았다.
정랑[正郞 (정五품)
인사(人事)행정의 실무 기찰자(起察者)로서 권한이 컸는데, 전랑(銓郞)은 삼사(三司)관원중에서 명망이 특출한 사람으로 임명했는데, 이들의 임면(任免)은 이조판서(吏曹判書)도 간여하지 못했고 전랑(銓郞) 자신이 후임자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전랑(銓郞)을 지낸 사람은 특별한 과오가 없는한 대체로 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마련이었다.
헌납(獻納) (정五품)
사간원(司諫院)의 관직으로서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집의(執義), 장령(掌令), 지평(持平), 감찰(監察)과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 사간(司諫), 헌납(獻納), 정언(正言) 등을 가리킨다. 홍문관(弘文館),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을 삼사(三司)라 했는데, 삼사(三司)의 관원은 학식과 인망이 두터운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三司의 직위는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 하여 명예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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