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종친회(宗親會)와 족보(族譜) 문화(文化)

임화영 2021. 3. 7. 11:39

종친회(宗親會)와 족보(族譜) 문화(文化)

 

 

 

오늘날은 종친회와 족보에 대한 본래의 고유하고 아름다웠던 개념은 이미 사라지고 종친회와 족보를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른의 세대조차 관심이 없고 젊은 세대는 아예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일부의 어른들은 이것을 굳이 고집하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사실 조상을 모시는 뜻도 잘 모르면서 굳이 종친회나 족보에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는 본래 있던 뜻만 모를 뿐 우리민족의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 문화의 정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종친회와 족보 문화가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질 만큼 우리 민족의 참으로 귀한 정신문화의 역사적 흔적이다. 오늘날 왜 관심 없는 옛 것이 된 것일까? 아마도 종친회와 족보의 참 가치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친회나 족보가 생기면서 그 가치를 잃어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종친회와 족보 문화의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오랜 역사적 배경이 관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종친회의 종()자는 마루종이다. , 최고의 종이고 친()자는 일반 친목회처럼 친할 친이라고 하며 부모친자로도 불린다. 여기에 모일 회를 붙여 최고의 부모를 찾아가는 모임이란 뜻이 된다. 각 종친의 최고의 부모, , 조상을 따라가면 성씨를 넘어서 결국 천손의 한 조상이 된다.

 

 

 

 

 

족보와 종친회는 조선 중기에 생겨났으며 대부분 고려시대의 중시조를 정해 종친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중기) 부터 족보와 종친회가 생기면서 성씨 이기주의로 흘러가 같은 민족을 남으로 갈라놓는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남존여비 사상까지 들어와 그 본래의 뜻을 완전히 흐려놓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만 것인가. 우리는 고려 시대 이전의 역사를 잃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씨가 중시조로 시작하고 시대는 고려조에서 부터 시작한다.

 

 

 

 

 

종친회는 족보를 관리하고, 각 성씨의 부계(父系)를 정리하여 보관하는 일을 했으며 동성동본의 근친혼(近親婚)을 금하게 하여 서로 타성끼리의 혼인을 통하여 핏줄을 하나로 하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서로 일가친척(一家親戚)의 관계로 한 가족이며 절대로 서로 남남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조상의 지혜이고 또한 정신이며, 얼이 된다. 종친회와 족보문화는 양반, 상인의 신분 문화가 정착된 조선조 중기에서 생긴 것이고 분명히 조상의 훌륭한 정신을 되찾자는 우리 민족의 얼 문화에 뿌리를 둔 것이다. 종친회와 족보에 담긴 숭조(崇祖)의 참 정신의 뿌리를 찾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豊川任氏28世孫 / 晉州任氏19世孫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