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에 대해서

임화영 2021. 5. 22. 10:06

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에 대해서

 

 

족보(族譜)란 한 종족의 혈연(血緣) 관계를 부계(父系) 중심으로 기록한 계보(系譜)이며 문벌기록(門閥記錄)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 집안의 역사책으로서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역대 조상님에 대한 역사와 업적, 그리고 소중한 정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집안의 살아 있는 역사(歷史)책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1821(純祖21) 21世孫 諱 도유(道儒)께서 창간(創刊) 하신 후 수차에 거쳐 족보(族譜)束修하여 왔으며 1860년 한문(漢文)으로 상하권(上下卷)으로 발행하고, 1891년 한문(漢文)으로 상중하(上中下)로 발행하였으며 1928년에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등화보결(燈火保結)하여 보책을 편수함에 계선유후(繼先裕後)의 문헌(文獻)이 귀감(遺憾)이 얻게 되었다. 19573권을 한문(漢文)으로 편집(編輯)하여 발행하고 1979년 전권(全卷)으로 진주임씨(晉州任氏)를 사용하는 손()으로 구성하여 한문으로 출판(出版)되었다. 2009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문을 혼용하고 인원이 많치가 않아 자녀(子女)들을 함께 등재(登載)하여 그 해 9월 한문한글 혼용(混用)으로 발행하였다.

 

 

 

 

 

2009진주임씨(晉州任氏) 족보(族譜) 발행 후() 2021년 현재 족보(族譜) 편수(編修)에 참여한 분들 중 생존해 있는 분들이 많치 않고 편수(編修)에 있어서 진주임씨(晉州任氏)에 대해 전문지식을 지녔던 분들이 別世하여 향후 족보(族譜)에 편수(編修)에 많은 심려(心慮)가 된다. 2009년족보 편수에 10여명이 참여하여 발행을 하였지만 오타와 기록의 오류가 있었다. 편수 실무를 하셨던 경영(庚永)께서 생존에 계실 때 족보(族譜) 등재(登梓)에 있어 연락이 두절되어 많은 일가(一家)들이 빠져있어 진주임씨(晉州任氏) 宗親(종친)들을 찾아 결합(結合)하여 조기(早期)에 편수(編修)하라고 당부(當付)하시기도 하였다.

 

 

 

 

진주임씨대종회(晉州任氏大宗會)에서 족보(族譜)에 등재되지 못한 일가(一家)들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연락처의 부재로 한계성은 있지만 대종회 조직이 활성화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대종회장과 총무, 재무로 구성된 대종회(大宗會)로 이어져 내려와 체계적인 기능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근들어 종친(宗親)들이 대종회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연령층도 많이 젊어지고 희망적이다. 코로나19로 대종회의 많은 일정들이 미루어진 상태이지만 앞으로 대종회는 체계적으로 운영되길 기대하며 많은 일가를 찾기 위해서는 진주임씨족보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대종회 자료를 근거로 일가를 찾고 변경된 사항을 수정, 보완된 자료(資料)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혈족(血族)과 전통적 가족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온 민족(民族)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정치, 사회, 문화, 사상, 문명 등이 변한다 할지라도 족보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글로 정리하여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족보(族譜)에 대한 높은 가치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 조상님들이 피와 땀으로 이룬 족보를 우리만이 갖고 있는 자랑스러운 전통(傳統)으로 여기고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이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晉州任氏29世孫和永謹書 / 010-4723-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