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와 비조 및 시조

임화영 2023. 3. 4. 10:58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와 비조 및 시조

 

 

임씨(任氏)는 풍천(豊川), 장흥(長興), 진주(晋州), 곡성(谷城), 과천(果川), 아선(牙善), 회덕(懷德), 함풍(咸豊) 29개 본()이 전해지나 그 가운데 풍천임씨와 장흥임씨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이 시조(始祖)는 본래 중국(中國)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고려(高麗) 때 은자광록대부 (銀紫光祿大夫)에 오른 ()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풍천(豊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5세손(世孫)()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는데, 그의 아들 대()에 와서 백파(伯派:자송)와 중파(仲派:자손)로 크게 나뉘며 두 파()에서 고루 인물을 배출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진주임씨(晋州任氏)고려 충숙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고 (1339, 고려사) 정난공신(精難功臣)에 올랐고 충혜왕 대까지 벼슬하여 판시중삼사(判侍中三司)에 이르렀고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에 진봉된 백파조(伯派祖)자송(子松)의 자손으로 넷째 아들인 덕생(德生)은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 졌으며 그의 아들은 고려시대 삼사소속의 종3품 좌윤(左尹)을 지낸 을일(乙馹)이다.

 

 

 

 

좌윤공(左尹公)의 아들 ()은 여말 선초의 인물로 초명은 충()이며 호는 죽곡(竹谷)이다. 고려 말엽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랑(正郞), 헌납(獻納)을 역임하였고 고려의 사직이 망하고 조선이 개국함에 벼슬을 그만두고 경남 산청군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조정에서 나아가 일하기를 권유하면서 이르기를 어디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리요.” 하니 공이 답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요.”라고 하면서 절의를 지켜 수양산에서 은거하며 이름을 충()에서 형()으로 바꾸고 옛 임금을 사모하다가 말년에 고향인 전주로 귀향(歸鄕)하여 끝내 몸을 마쳤으며 사후에 충정(忠貞)의 시호를 받았다. 자손들은 풍천임씨 8세에서 분관(分貫)덕생(德生)을 비조(鼻祖),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킨 ()을 시조(始祖)로 삼아 1752(영조28)() 아들인 유도(有度)에 의해 진주임씨(晋州任氏) 틀을 잡고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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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임씨역사연구원 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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