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진주임씨(晋州任氏) 인물(人物)소개 (동영상)

임화영 2021. 6. 11. 12:37

진주임씨(晋州任氏) 인물(人物)소개 (동영상)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 7世孫 諱 덕생(德生) 고려조 좌복야(左僕射 : 2)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이후 풍천임씨(豊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덕생(德生)1325년 황해도 풍천(豊川) 출신으로 동지밀직사(同知密直事)를 거쳐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와 충숙왕 때 일등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올랐던 자송(子松)의 넷째 아들이다.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진주임씨(晋州任氏) 비조(鼻祖)이다.

 

 

 

 

 

덕생(德生)의 손자(孫子) ()은 고려 말 문신(文臣)으로 전주(全州) 출생이며 초명은 충(), ()는 죽곡(竹谷), 는 형(),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다. 고려조 말기 1385년에 음서(蔭敍)로 관직에 나갔다가 1389(창왕1) 문과(文科)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을 지내고 1392(공양왕3) 고려 멸망 후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벼슬을 그만 두고 경상도(慶尙道)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생활을 하며 충절(忠節)을 지킨 인물(人物)로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 ()5世孫 諱 윤성(尹聖)은 자()는 상경(商卿), ()는 숙계(淑溪)로 어려서 이이(李珥)를 만나 공부하였으며 중용(中庸) 책머리에는 율곡이 한 말을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쓴 것을 보고 율곡이 책으로 만들 것을 권유하여 용학문답(庸學問答)을 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윤성(任尹聖)은 성균관 유생의 반열에서 선조임금의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여 신의주까지 갔으며 이 공로로 선무랑(宣務郞)을 제수 받았고 봉훈랑과 군자감주부를 거쳐 조산대부에 오르고 말년에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냈으며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성덕군자(盛德君子)라 칭송한 인물(人物)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700년 역사를 지니며 충()과 효(), (), (), (), ()를 고루 갖춘 문중(門中)으로 각 분야에 유능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도내창의도유사(道內倡義都有司)를 지낸 모재공(慕齋公) 경무(慶茂), 소찬문집(所撰文集)을 지은 상산공(尙山公) ()과 현대에 유림(儒林)으로 향교회장(鄕校會長)을 지낸 청강(淸岡) 헌준(憲濬), 취송(翠松) 재교(在敎), 우강(牛崗) 석우(錫祐)가 있으며 정계(政界), 재계(財界), 학계(學界), 의학계(醫學界), 종교계(宗敎界)에서 활동하는 인물(人物)이 많다.

 

위 영상은 진주임씨(晉州任氏) 후손(後孫) 중 일부만 소개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자료가 수집되는데로 수정, 보완하여 제작 예정입니다. 종친(宗親) 개인의 프로필과 사진 그리고 진주임씨(晉州任氏)에 관련된 자료는 주저하지 마시고 이메일 koreamag@hanmail.net 또는 메시지 및 카카오톡010-4723-6100 으로 제출해 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晉州任氏28世孫和永 (010-4723-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