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임씨(晋州任氏) 인물(人物)소개 (동영상)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 7世孫 諱 덕생(德生) 고려조 좌복야(左僕射 : 정2품)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이후 풍천임씨(豊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諱 덕생(德生)은 1325년 황해도 풍천(豊川) 출신으로 동지밀직사(同知密直事)를 거쳐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와 충숙왕 때 일등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올랐던 諱 자송(子松)의 넷째 아들이다.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진주임씨(晋州任氏) 비조(鼻祖)이다.
諱 덕생(德生)의 손자(孫子) 諱 형(衡)은 고려 말 문신(文臣)으로 전주(全州) 출생이며 초명은 충(衝), 호(號)는 죽곡(竹谷), 諱는 형(衡),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다. 고려조 말기 1385년에 음서(蔭敍)로 관직에 나갔다가 1389년(창왕1년) 문과(文科)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을 지내고 1392년(공양왕3년) 고려 멸망 후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벼슬을 그만 두고 경상도(慶尙道)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생활을 하며 충절(忠節)을 지킨 인물(人物)로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 諱 형(衡)의 5世孫 諱 윤성(尹聖)은 자(字)는 상경(商卿), 호(號)는 숙계(淑溪)로 어려서 이이(李珥)를 만나 공부하였으며 중용(中庸) 책머리에는 율곡이 한 말을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쓴 것을 보고 율곡이 책으로 만들 것을 권유하여 용학문답(庸學問答)을 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윤성(任尹聖)은 성균관 유생의 반열에서 선조임금의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여 신의주까지 갔으며 이 공로로 선무랑(宣務郞)을 제수 받았고 봉훈랑과 군자감주부를 거쳐 조산대부에 오르고 말년에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냈으며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성덕군자(盛德君子)라 칭송한 인물(人物)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700년 역사를 지니며 충(忠)과 효(孝), 인(仁), 의(義), 예(禮), 지(知)를 고루 갖춘 문중(門中)으로 각 분야에 유능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도내창의도유사(道內倡義都有司)를 지낸 모재공(慕齋公) 諱경무(慶茂), 소찬문집(所撰文集)을 지은 상산공(尙山公) 諱 책(責)과 현대에 유림(儒林)으로 향교회장(鄕校會長)을 지낸 청강(淸岡) 諱 헌준(憲濬), 취송(翠松) 諱 재교(在敎), 우강(牛崗) 諱 석우(錫祐)가 있으며 정계(政界), 재계(財界), 학계(學界), 의학계(醫學界), 종교계(宗敎界)에서 활동하는 인물(人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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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任氏28世孫和永 (010-4723-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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