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풍천임씨 인물고편 8세 임덕생(任德生)

임화영 2021. 8. 20. 09:48

풍천임씨 인물고편 8세 임덕생(任德生)

 

 

풍천임씨(豐川任氏)와 진주임씨(晉州任氏)의 시조 ()6世孫()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 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 대장군(監門衛 大將軍)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대()에 와서 백파(伯派:자송)와 중파(仲派:자손)로 크게 나뉘며 두 파()에서 고루 인물을 배출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자송(子松)은 백이정(白以正)의 문인(門人)으로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 서하부원군(西下府院君)에 봉해졌고, 자순(子順)은 통헌대부(通憲大夫)로서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냈다.

 

 

 

 

 

풍천임씨 인물고편(人物考編)에 기록되어 있는 백파의 자송(子松)경유(景儒), 덕유(德儒), 덕수(德壽), 덕생(德生) 4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풍천임씨 인물고편(人物考編)경유(景儒), 덕유(德儒), 덕수(德壽) 3명의 아들을 기록하고 덕생(德生)은 기록치 않고 있다. 덕생(德生)고려조에 생원(生員)을 거쳐 상서성(尙書省) 좌복야(左僕射, 2)를 지내고 공로가 있어 공민왕(恭愍王)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넷째 아들이다.

 

 

 

 

 

임경유(任景儒)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자송(子松)의 아들이다. 중현대부 성균제주(中顯大夫 成均祭酒)를 역임하셨다. 묘는 선영(先塋) 아래에 있다고 한다. ()은 안동김씨(安東金氏) 양간공(良簡公) 승택(承澤)의 딸이다.

 

임덕유(任德儒)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공로가 있어 풍산군(豐山君)을 봉했다.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묘는 풍천(豐川) 남면(南面) 사인암(舍人岩)에 있다. ()은 이천서씨(利川徐氏) 지합문사(知閤門事) ()의 딸이다.

 

임덕수(任德壽)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자송(子松)의 아들이다. 사복시사(司復時事)를 역임하셨다. ()은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충공(文忠公) 제현(齊賢)의 딸이다.

 

임덕생(任德生)

어사대부(御史大夫)이신 임주(任澍)의 손자이며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자송(子松)의 아들이시다. 고려조에 생원(生員)을 거쳐 상서성(尙書省)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시고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하셨으며 묘는 선영(先塋) 아래에 있다고 한다. () 연일정씨(延日鄭氏) 정언철(鄭言哲)의 딸이다.

 

 

임향(任珦)

어사대부(御史大夫)이신 임주(任澍)의 손자이며 민부전서(民部典書) 자순(字順)의 큰아드님이시고 고려말(高麗末)에 정승(政丞) 장령(掌令)을 지냈다. 신돈이 정권을 잡고 나라가 어지러움에 왕에게 직동(直諌)을 하시다가 홍주, 고두도, 남포, 죽도(竹島) 등에 유배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도 웅치(熊峙) 오상동에 은거하셨고 묘는 남포현(웅천면 평리) 양각산에 있다. 아들 안길(安吉), 효곤(孝崑)을 두셨다.

 

임진(任瑨)

민부전서(民部典書) 자순(字順)의 아들이요 어사대부(御史大夫) ()의 손자다. 고려조(高麗朝)에 벼슬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 원융부 좌사윤(圓融府 左司尹)을 지냈다. 묘는 임진(臨津) 동총(東村) 창화토(昌化土)에 있다.

 

덕생(德生)은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져 진주임씨(晉州任氏)로 분관되어 진주임씨(晉州任氏) 비조(鼻祖)이며 시조 ()7世孫이다.

 

 

晉州任氏28世孫和永(010-4723-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