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州任氏(진주임씨)

임성윤(任聖尹) 분의당유고집(奮義堂遺稿集)

임화영 2021. 8. 26. 08:11

임성윤(任聖尹) 분의당유고집(奮義堂遺稿集)

 

 

 

임성윤(任聖尹)의 자()는 사형 (士衡), ()는 분의당(奮義堂) 풍천임씨(豐川任氏) 20世孫이다. 묘소(墓所)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 소금당 선영에 있다. 분의당(奮義堂) 성윤공(聖尹公)은 풍천임씨 정승공(任珦) 후예로 맨 처음 정승공파가 장자(長子)로 정조정사보(正祖丁巳譜1797)에 입보하는데 족보의 수단(修單)을 모으고 종계(宗契)를 만들어 평생을 종친 발전을 위해 병고에도 말년까지 족보 일을 위해 헌신 하였으며 분의당유고집(奮義堂遺稿集)를 남겼다.

 

 

분의당유고집

 

 

 

풍천임씨(豐川任氏) 옛날 세보(世譜)로는 정평부사(定平府使) (-17世孫)에 의하여 숙종 7년에 발간된 정평신유보(定平辛酉譜)와 그로부터 5년 후 황해도 관찰사 홍망(弘望-18世孫)에 의해 1686년 해주에서 발간한 해주병인보(海州丙寅譜)가 있었으나 간행한 동기가 사대부 집안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어서 현달(顯達)한 가문(家門)을 주축으로 되어있고 농사일을 하는 한미(寒微)한 종인(宗人)들은 많이 빠져있고 자순(字順)의 장남 (-7世孫)과 정승공파(政丞公派) 후손들은 구족보에 수록되지 못했다. 해주병인보가 나온지 57년 후인 1743년에 백파(伯派)의 찬성공(-20世孫)과 중파(仲派)의 승지공 사하(師夏-20世孫) 두 분께서 백파, 중파의 합작인 세보를 편찬하기로 합의하고 각 종파에 수단통보(收單通報)를 하셨고 납단(納單)까지 하셨으나 찬성공은 1760년에 승지공은 1761년에 작고 하셨다. 그 후 변동사항이 많아 1797년 추가수단을 받아 정조정사보(正祖丁巳譜)가 출간되었다.

 

 

분의당 임성윤 공덕비

 

 

진주임씨(晉州任氏)정조정사보(正祖丁巳譜) 출간 후 24년이 지난 1821(純祖21) 풍천임씨(豐川任氏) 시조 ()을 보계하여 21世孫 諱 도유(道儒)께서 창간(創刊) 하셨다. 그 후 수차에 거쳐 족보(族譜)束修하여 왔으며 1860년 한문(漢文)으로 상하권(上下卷)으로 발행하고, 1891년 한문(漢文)으로 상중하(上中下)로 발행하였으며 1928년에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등화보결(燈火保結)하여 보책을 편수함에 계선유후(繼先裕後)의 문헌(文獻)이 귀감(遺憾)이 얻게 되었다.

 

 

 

고려정승 임향(정승공파조)의 묘

 

 

 

분의당(奮義堂) 성윤(聖尹)께서는 정조정사보(正祖丁巳譜)의 수보 당시 정승공파(政丞公派) 유사로 계셨다. 병석에서 보청(譜聽)의 수보유사들과 교신하신 기록들을 아들 장탁(將鐸)에 의해 분의당유고(奮義堂遺稿)로 보존되어오고 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평리 양각산에 민부전서 자순공 제단비를 비롯하여 고려정승 임향 신도비, 정승공 임향 묘소,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 소금당엔 분의당 임성윤 공덕비가 있다.

 

 

晉州任氏28世孫和永 (010-4723-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