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임화영 49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와 비조 및 시조

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와 비조 및 시조 임씨(任氏)는 풍천(豊川), 장흥(長興), 진주(晋州), 곡성(谷城), 과천(果川), 아선(牙善), 회덕(懷德), 함풍(咸豊) 등 29개 본(本)이 전해지나 그 가운데 풍천임씨와 장흥임씨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이 시조(始祖)는 본래 중국(中國)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사람으로 고려(高麗) 때 은자광록대부 (銀紫光祿大夫)에 오른 諱 온(溫)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諱 온(溫)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풍천(豊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諱 온(溫)의 5세손(世孫)인 諱 주(澍)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按察使..

진주임씨(晉州任氏) 역사와 인물(人物) - 동영상

진주임씨(晉州任氏) 역사와 인물(人物)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諱온(溫)을 보계하고 있다. 諱 온(溫)의 7世孫인 諱자송(子松)은 백이정(白以正)의 문인(門人)으로 조적(趙積)의 난(亂)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 서하부원군(西下府院君)에 봉해진 인물로 諱 경유(景儒), 諱 덕유(德儒), 諱 덕수(德壽), 諱 덕생(德生) 4형제를 두었으며 四男인 좌복야(左僕射 : 정2품)를 지낸 諱 덕생(德生)이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이후 풍천임씨(豊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晉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諱 덕생(德生)은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진주임씨(晋州任氏)의 비조(鼻祖)이다. 諱 덕생(德生)이..

진주임씨(晋州任氏) 인물(人物)소개 (동영상)

진주임씨(晋州任氏) 인물(人物)소개 (동영상) 진주임씨(晋州任氏)는 풍천임씨(豊川任氏) 7世孫 諱 덕생(德生) 고려조 좌복야(左僕射 : 정2품)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이후 풍천임씨(豊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諱 덕생(德生)은 1325년 황해도 풍천(豊川) 출신으로 동지밀직사(同知密直事)를 거쳐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와 충숙왕 때 일등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올랐던 諱 자송(子松)의 넷째 아들이다.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진주임씨(晋州任氏) 비..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국침(鞠沈)의 만사(輓詞)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국침(鞠沈)의 만사(輓詞) 앞서 게재한 구대우(具大佑) 선생과 환성(喚醒) 국함(鞠涵) 선생께서 쓰신 숙계공(淑溪公) 만사(輓詞)를 소개하였다. 고산현(高山縣)을 비롯하여 한양과 거창, 합천 등 많은 선인이 숙계공(淑溪公)에 대한 칭송과 친분 관계, 다정했던 일을 떠올리고 존경과 흠모의 뜻을 밝히는 200여 개의 만장을 기록하였다. 이번엔 만송(灣松) 국침(鞠沈) 선생께서 쓰신 숙계공(淑溪公) 만사(輓詞)를 소개한다. 만송(灣松) 국침(鞠沈, 1576~1654)은 조선 중기 학자로 자(字)는 심원(深源), 호(號)는 송만(松灣). 본관(本貫)은 담양(潭陽)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13년(광해 5) 사마시(司馬試)에 그의 형 국함(鞠涵)과 함께 합격했으며 첨지중추부사(僉..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국함(鞠涵)의 만사(輓詞)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국함(鞠涵)의 만사(輓詞) 만사(輓詞)를 만장(輓章)이라고도 하며 만(輓)이란 앞에서 끈다는 뜻으로 상여가 떠날 때 만장을 앞세워 장지로 향한다는 뜻에서 만장(輓章)이라고 부르며, 망인(亡人)이 살았을 때의 공덕(功德)을 기려 좋은 곳으로 갈 것을 인도하게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만사(輓詞)의 규격은 일정하지 않지만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오언율시(五言律詩) 또는 칠언절구(七言絶句)와 칠언율시(七言律詩)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에 따라서는 고시체를 본떠서 장문 시의 글을 짓거나 4 자체로 쓰는 예도 있다. 내용은 일반적으로 망인의 학덕(學德), 이력(履歷), 선행(善行), 문장(文章), 직위(職位) 등에 대한 칭송(稱訟)과 망인(亡人)과 자기와의 친분(親分) 등을 표시하고, 평..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구대우(具大佑)의 만사(輓詞)

임윤성(任尹聖)에 대한 구대우(具大佑)의 만사(輓詞) 임윤성(任尹聖, 1547년∼1608년)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字)는 상경(商卿), 호(號)는 숙계(淑溪),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고,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고산면(高山面) 관동(寬洞: 옛날 고산현(高山縣))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이이(李珥)를 만나 공부하였는데, 『중용(中庸)』 책머리에는 율곡이 한 말을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쓴 것을 보고 율곡이 책으로 만들 것을 권유하여 『용학문답(庸學問答)』을 펴내게 되었다. 1579년(선조21) 식년(式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다.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 시절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었는데 그의 박식함을 보고 율곡에게 빨..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 사적(事蹟) 연보(年譜)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 사적(事蹟) 연보(年譜) 임윤성(任尹聖)(1547-1608) 자(字)는 상경(商卿), 호(號)는 숙계(淑溪), 휘(諱)는 윤성(尹聖), 本貫은 진주(晉州)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 비조(鼻祖)인 高麗時代 門下市中 좌복야(左僕射) 임덕생(任德生)과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인 고려문하성(高麗門下省) 헌납공(獻納公) 임형(任衡)의 후손(後孫)으로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 임천수(任千壽)의 아들로 그의 사적(事蹟) 연보(年譜)를 기록한다. 1세 (1547년-명종2년) 1547년(명종2년) 4월 20일 묘시에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주남동(周南洞)에서 태어났다. 부친 첨추공(僉樞公)이 명명을 윤성(尹聖)이라하였으니 대개 중국 상나라 이윤이로 희망하였다. 관례를 갖..

진주임씨(晉州任氏) 본관(本貫)에 대한 정설(正說)

진주임씨(晉州任氏) 본관(本貫)에 대한 정설(正說) 진주(晋州)를 관향(貫鄕)으로 둔 진주임씨(晉州任氏)는 고려말 중시조(中始祖)인 諱형(衡)께서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으로 진주(晉州)의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한 이유로 관향(貫鄕)을 진주(晉州)로 두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어떠한 문헌(文獻)에도 기록된 바 없다. 수양산(首陽山)은 해발 500M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해 있고 진주(晉州)와는 약30Km 차이가 있으며 고려 말 당시 진주(晉州)에서 수양산(首陽山)까지는 도보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따라서 시조(始祖) 諱형(衡)께서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하셨다고 진주(晉州)로 관향(貫鄕)을 두었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본관(本貫)이란 시조(始祖), 혹은 중시조(中始祖)의..

진주임씨(晋州任氏) 숙계공(淑溪公) 諱임윤성(任尹聖) 향사(享祀)

진주임씨(晋州任氏) 숙계공(淑溪公) 諱임윤성(任尹聖) 향사(享祀) 천곡서원(泉谷書院)은 조선 중기의 문신 숙계(淑溪) 諱임윤성(任尹聖)을 배향하는 서원(書院)이다. 본래 백현서원(栢峴書院)에 諱임윤성(任尹聖, 1547-1608)과 조선 중기의 문신 諱구영(具瑩, 1584∼1663)과 함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으나 헌작(獻酌)의 문제로 1941년 숙계(淑溪) 諱윤성(尹聖)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천곡서원(泉谷書院)을 건립하여 諱임윤성(任尹聖)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하였다. 천곡서원(泉谷書院) 경내에 위치한 천곡사(泉谷司)에서 고산향교(高山鄕校) 유림들과 진주임씨(晉州任氏) 후손(後孫)들에 의해 매년 음력(陰曆) 2월 15일에 향사(享祀)를 하고 있다. 2021년은 3월 27일(음력 2월15일)에 향사(享祀)하..

진주임씨(晋州任氏) 비조(鼻祖)와 시조(始祖)

진주임씨(晋州任氏) 비조(鼻祖)와 시조(始祖)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諱온(溫)을 보계하고 있다. 諱온(溫)의 6世孫인 諱주(澍)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대(代)에 와서 백파(伯派:자송)와 중파(仲派:자손)로 크게 나뉘어 졌다. 諱자송(子松)은 백이정(白以正)의 문인(門人)으로 조적(趙積)의 난(亂)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 서하부원군(西下府院君)에 봉해졌고, 諱자순(子順)은 통헌대부(通憲大夫)로서 민부 전서(民部典書)와 개성부사(開城府使)를 지냈다. 諱자송(子松)은 諱경유(景儒), 諱덕유(德儒), 諱덕수(德壽), 諱덕생(德生) 4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