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임씨유래 47

임병교(任炳敎) - 진주임씨(晋州任氏) 27世

임병교(任炳敎) - 진주임씨(晋州任氏) 27世 교육자(敎育者)로서 평생을 몸 바쳐 헌신(獻身)하고 공헌(貢獻)한 임병교(任炳敎)는 진주임씨대종회장(晋州任氏大宗會長)으로 호(號)는 다산(多山)이며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933년 전북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에서 출생하였고 천곡서원(泉谷書院)에 배향된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의 12世孫으로 고산향교(高山鄕校) 전교(典校)를 지낸 헌준(憲濬)의 아들, 시모(時模)의 손자(孫子)이며, 공조참판(工曹參判) 희신(希臣)의 증손자(曾孫子), 도황(道滉)의 현손(玄孫)으로 진주임씨(晋州任氏) 26世孫이다. 임병교(任炳敎)는 전북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자율학교로 명성이 있는사학의 명문 화산중학교((華山中學校) 교장(校長)을 지냈으며 ..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의 묘갈명(墓碣銘)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의 묘갈명(墓碣銘) 고려문하성헌납죽곡충정공묘갈명(高麗門下省獻納竹谷忠貞公墓碣銘) 높으시다 저 천잠산이여 방박(磅礡)한 형체이며 명미한 빛이 있도다. 삼산양지편에 한 언덕이 있으니 그곳이 선생이 머므른 처소이다. 선생의 성은 임(任)이요 적(籍)은 풍천(豊川)이다. 諱는 형(衡)이요 호(號)는 죽곡(竹谷)이며 익호(謚號)는 충정(忠貞)이니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 諱온(溫)字로 상조를 삼다. 어사대부(御史大夫) 諱는 주(澍)요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諱는 자송(子松)이요 문하시중좌복야(門下侍中左僕射) 諱는 덕생(德生)이요 고려(高麗) 좌윤(左尹) 諱는 덕생(德生)이니 그 고조, 증조, 할아버지, 아버지시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부지런이하고 몸을 닦으며 충효입지하여..

임씨(任氏) 본관(本貫)의 역사(歷史)

임씨(任氏) 본관(本貫)의 역사(歷史)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임씨(任氏) 성(姓)을 가진 분들을 만나면 관향(貫鄕)을 떠나서 우선 반갑고 같은 종인으로 친밀감을 갖게 되고 시조를 다르게 모시고 있으나, 대내적으로는 상호간에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고 인정하여 서로 종씨라고 부르고 있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있다. 종인들 간에 종가(宗家)는 어디이고 분관의 기점이 어디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소견을 밝힌다. 1. 임씨(任氏)의 원조(元祖) (한국의 귀화성씨 참조) 1) 황제(黃帝 軒轅)의 아들 우양(禹陽)이 임성(任城) 제후가 된 뒤 시조가 됨 2) 복희씨(伏羲氏) 자손 풍(風)씨가 임국(任國) 제후가 된 뒤 임(任)씨가 됨 2. 삼국시대 임씨(任氏) 성(姓)의 인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천곡서원(泉谷書院)의 문서(文書)와 자료(資料)

천곡서원(泉谷書院)의 문서(文書)와 자료(資料) 천곡서원(泉谷書院)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산남로 52-32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을 배향하는 서원(書院)이다. 본래 백현서원(栢峴書院)에 임윤성(任尹聖, 1547-1608)과 조선 중기의 문신 구영(具瑩, 1584∼1663)과 함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으나 1941년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천곡서원(泉谷書院)을 건립하여 임윤성(任尹聖)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하였다. 천곡서원(泉谷書院)은 1941년 정면 3칸 측면 1칸의 천곡서원(泉谷書院)을 짓고 1972년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강당을 창건하고 1993년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강당과 사당, 기념비 등이 ..

임덕생(任德生) 진주임씨(晉州任氏) 비조(鼻祖)

임덕생(任德生) 진주임씨(晉州任氏) 비조(鼻祖) 임덕생(任德生)은 1325년 황해도 풍천(豊川) 출신으로 동지밀직사(同知密直事)를 거쳐 익찬공신(翊贊功臣)의 호를 받고 첨의평리(僉議評理)와 충숙왕 때 일등공신으로 서하군(西河君)에 올랐던 임자송(任子松)의 넷째 아들이다. 성균관 제주를 지내고 풍원군(豊原君)으로 봉해진 경유(景儒)가 長男이며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낸 문간공(文簡公) 諱덕유(德儒)는 次男이고 三男 덕수(德壽)는 판사복사사(判司僕史事)를 지냈으며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諱덕생(德生)이 四男이다. 진주임씨(晉州任氏)는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덕생(德生)에 이르러 풍천임씨(豊川任氏)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었다. 諱덕생(德生)은..

천곡단지(泉谷壇誌) - 진주임씨(晋州任氏) 보서(寶書)

천곡단지(泉谷壇誌) - 진주임씨(晋州任氏) 보서(寶書) 전북 완주의 고산6개면(전, 고산현)에는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서원들이 있다. 거창현감을 지낸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을 배향(配享)하는 천곡서원(泉谷書院)을 비롯하여 죽유(竹牖) 구영(具瑩)을 배향(配享)하는 백현서원(栢峴書院), 국유(鞠襦), 국함(鞠涵), 국침(鞠沈) 삼형제를 배향(配享)하는 반곡서원(泮谷書院), 김집(金集)과 김집(金集)의 제자인 관곡(寬谷) 최서림(崔瑞琳), 월곡(月谷) 류종흥(柳宗興)을 배향(配享)하는 봉양서원(鳳陽書院)이 있으며 이중 천곡사(泉谷司)에 배향(配享) 되신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 선생(先生) 연세가 가장 높다. 천곡단지(泉谷壇誌)는 1962년 1권..

카테고리 없음 2020.12.25

우강(牛崗) 임석우(任錫祐) - 진주임씨(晉州任氏) 28世

우강(牛崗) 임석우(任錫祐) - 진주임씨(晉州任氏) 28世 현대의 유생(儒生)으로 호(號)는 우강(牛崗)이고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920년 전북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에서 출생하였고 천곡서원(泉谷書院)에 배향된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숙계(淑溪) 諱윤성(尹聖)의 13世孫이다. 경교(敬敎)의 장남(長男), 헌국(憲國)의 손자(孫子), 원모(元模)의 증손(曾孫), 도수(道洙)의 현손(玄孫)으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常任顧問) 승영(承永), 파월장병 상영(相永), 태영(泰永), 시영(時永), 우영(宇永), 경호실(警護室) 작전요원(作戰要員)을 거쳐 (株)예스북 代表理事인 화영(和永)의 부친(父親)이고 (주)케이탑자산관리 代表理事 동수(東秀), 동환(東煥) 대명초저온 대표 동균(東均), 동학(東學), 동..

임달영(任達永) - 진주임씨(晋州任氏) 29世

임달영(任達永) - 진주임씨(晋州任氏) 29世 임달영(任達永)은 완주군체육회 사무국장(事務局長)으로 본관(本貫)은 진주(晋州)이다. 1956년 전북 완주군 화산 출신(出身)으며 천곡서원(泉谷書院)에 배향된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의 14世孫으로 석환(錫煥)의 사남(四男)이다. 후교(厚敎)의 손자(孫子), 헌병(憲柄)의 증손(曾孫), 도황(道滉)의 현손(玄孫)이다. 배(配)는 완주군 화산면 의용소방대장을 지낸 교동인씨(喬桐印氏) 희숙(姬淑)이며 슬하(膝下)에 동준(東俊)과 성신(聖信) 1男 1女를 둔 진주임씨(晋州任氏) 28世孫이다. 화산농협(華山農協) 이사(理事)와 감사(監査), 화산면 체육회장(體育會長), 완주군발전협의회 화산면 위원장(委員長), 완주군 생활체육회 총무(總..

임승영(任承永) - 진주임씨(晋州任氏) 29世

임승영(任承永) - 진주임씨(晋州任氏) 29世 임승영(任承永)은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常任顧問)으로 본관(本貫)은 진주(晋州)이다. 1939년 전북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에서 출생하였고 천곡서원(泉谷書院)에 배향된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낸 숙계(淑溪) 임윤성(任尹聖)의 14世孫으로 고산향교회장(高山鄕校會長)과 유도회고산지부장(儒道會高山支部長)을 지낸 우강(牛崗) 석우(錫祐)의 장남(長男)이며 경교(敬敎)의 손자(孫子), 원모(元模)의 증손(曾孫), 도수(道洙)의 현손(玄孫),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를 졸업하고 (주)케이탑자산관리 代表理事인 동수(東秀)와 1991년 미스코리아 전북 선(善) 수란(秀蘭)의 부친(父親)이고 진주임씨(晋州任氏) 28世孫이다. 이리고등학교를 거쳐 전주신학대학교(全州神學大學校)와 ..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유래(由來)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유래(由來) 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는 풍천임씨(豊川任氏)와 같은 諱임온 (任溫)을 보계하고 있으며 諱온(溫)의 6세손(世孫)인 諱주(澍)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경상도 안찰사(慶尙道按察使)를 거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대(代)에 와서 백파(伯派:자송)와 중파(仲派:자손)로 크게 나뉘며 두 파(派)에서 고루 인물을 배출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諱자송(子松)은 백이정(白以正)의 문인(門人)으로 조적(趙積)의난(亂) 때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올라 서하부원군(西下府院君)에 봉해졌고, 諱자순(子順)은 통헌대부(通憲大夫)로서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내고 개성부사(開城府使)를 역임하였다. 諱자송(子松)은 諱..